육개장(9천5백원)입니다. 비싸기는 하지만 손꼽히는 맛이죠.


특히, 질 떨어지는 소기름이나 식용유에 고춧가루를 써서 텁텁함이 강한 여느 육개장들과는 다른 개운함(육개장에 이런 표현이 어울릴까는 모르겠습니다만...)이 있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육개장입니다. 육계장이 아니라.
육개장의 개는 짐작 처럼 멍멍이를 뜻합니다.
개고기를 넣지도 않으며 왜 개라는 글자가 이름에 들었냐 하면,
예전에는 소나 돼지 보다 저렴한 육류인 개를 국밥에 넣어 만들어 먹으며 개장국이라 불렀는데, 형편이 나아지며 개고기를 소고기로 대체하며 그 구분을 위해 이름에 육자를 넣어 육개장이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중국에서 음식 이름에 육(肉)자가 들어가면 무조건 돼지고기로 만드는 음식을 뜻하며, 소나 닭 등의 다른 고기를 쓰게되면 우육(牛肉) 계육(鷄肉) 하는 식으로 그 종류를 써 넣어주는게 일반적인데 돼지고기를 주로 즐겨 먹었던 그들의 식습관에 기인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를 고기 중의 으뜸으로 치고 즐겨 먹었기에 육(肉) 하면 중국과는 달리 소를 뜻하는게 됩니다.
육(소를 넣은) 개장(개고기장국) 의 뜻입니다.
그러니 육계장이라 쓰면 안되죠. 계는 의미 없이 잘못 쓰여지는 글자입니다.
맛은 있지만 가격이 센 것도 사실입니다. 뭐 대부분의 이 집 음식들이 그렇습니다만...

찬은 두 가지. 쫙 깔아주는 여느 한식당들과는 다른게 이 집의 특징.


오랜만에 마주하는 옛 애인 같은 우래옥의 순면(메밀 100%로 만드는 면발의 냉면, 메뉴판에는 없고 별도 요청시 제공하며 기본형에서 1천원 추가되어 1만1천원 )

냉면만 먹게되면 선불이며 반찬은 겉절이 하나만 나옵니다.

그러나 요청하면 물김치도 가져다 주죠. 이 집 물김치 맛있습니다.

다시, 냉면으로 돌아와서... 아직 배채를 잔뜩 얹어 주는군요.

어느 시기가 되면 오이무침으로 바뀌는데 그게 참기름 범벅이어놔서 거슬립니다.
역시 우래옥 냉면에는 배채가 제일 잘 어울립니다.
냉면의 계란은 '메밀의 유독성분을 중화시켜주는 효과가 있어서 유익한..'어쩌구 하는 헛소리를 신봉하는 분들은 꽤나 섭섭하시겠습니다.
여느 정통 평양냉면집들과는 달리 돼지고기 꾸미가 얹히질 않습니다. 그러기에 국물에서 돼지맛도 나질 않죠.

예전 보다 배추김치 꾸미의 양이 늘어난 듯.

순면 면발은 여전히 국내 최고수준입니다. 감히 겨룰 자가 아직은 보이질 않는군요.

한국인으로 태어난 기쁨을 확인해주는 맛.

외국인들이 부러워할 맛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놓고 볼 때 차가운 물국수를 즐겁게 먹는 민족은 몇 되질 않습니다. 한국,일본,조선족 정도나 될까요.
그러기에 한국인으로 태어났기에 느낄 수 있는 기쁨이겠죠.
서양인들이나 중국 동남아인들에게 자랑스레 권하면 당혹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냉면맛도 느낄 줄 모르는 미맹이라서가 아니라 대대로 이어온 식문화의 차이에 따른 거부감이 강해서입니다.
요즈음은 좀 덜해졌습니다만 칠팔십년대에 한국인들에게 치즈 먹으라고 하는 것과 같을겁니다.
서양인들은 죽고 못 사는 치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괴이한 맛으로나 느껴졌는데 한국인이 입맛이 서구인들만 못해서가 아니듯.
빵과 고기 중심의 식문화에서는 치즈가 어울리지만 밥과 채소 수산물 위주의 우리 식문화에는 어울림이 그만 못해서일겁니다.
어쨌든, '역시 면발은 우래옥의 순면이 최고야'를 재차 확인하며....

이제는 육수에 집중해 봤습니다. 그런데....

변했네요.

예전에는 흡사 고깃국물을 차게 식혀 먹는 듯 정육향이 강하고 진하게 풍겨 올라 안티도 많이 양산하던 우래옥의 개성 강한 그 육수맛이 아닙니다.
물김칫국물을 많이(전 보다는) 섞은 듯 그런 맛이 강조되며 고기향과 맛은 크게 느껴지질 않는군요.
얼마 전에 먹어 본 평가옥의 평양냉면 육수와 큰 차이가 나질 않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른 시간에 가서 주문을 했기에 전 처럼 꿩완자가 나올 줄 알았는데 들지 않아서 물어 보니 이제는 꿩을 쓰질 않아서 완자도 없답니다.
전 보다 밋밋해진 육수맛의 비밀 중 하나가 더 밝혀졌습니다.
참으로 안타깝네요.
이 집의 육수맛이 최고의 평양냉면 육수였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각자가 즐김에 있어서 취향이 있는 것이고 이 집 것은 그 강렬한 개성으로 안티도 만들었지만 그 만큼 매니아도 양성해 내어 비싼 가격에도 끊임없이 찾게 만드는 중독성을 발휘했었는데...
현실타협일까요. 대중화일까요. 남들도 만드는 그런 스타일의 맛으로 좀 더 변화해 나갔기에 그 만큼 중독성도 줄고 매니아도 줄어들듯 합니다.
물론 그 만큼 안티도 줄겠지만...
제가 안티쪽이었다면 환영할만한 변화겠습니다만 중독층이었기에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나는 한달에 두세번은 가서 먹는 단골인데 변하기는 뭐가 변했다고 그러나? 변한 것 모르겠구만...'하시는 분도 계실듯 합니다.
단골분들이 업소의 변화를 가끔 가는 사람들 보다 더 모를 경우가 있습니다. 서서히 진행되는 변화에 길들여져서죠.
애 키우는 부모들은 가끔 찾아오는 친척들이 '아니, 어느새 이렇게 변해버렸냐? 길에서 만나면 몰라보겠네'하며 놀라워 할 때나 '우리 애가 그렇게나 변했나?'하죠. 그와 비슷할겁니다. 매일 보고 있으니 변화에 익숙해져서 느껴지질 않는..
그렇다고 가끔 가는 사람의 평가가 단골 보다 정확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단골들이 느끼지 못하는 변화를 집어낼 수도 있으니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무시하지만은 말라는 이야깁니다.
변화는 변화고 아직도 우래옥의 냉면은 대한민국의 정통 평양냉면으로 정상 중의 하나로 손색이 없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그 새 주차장이 대부분 채워졌습니다.

대형 외제차가 많이 세워지는 것도 우래옥 주차장의 특징 중 하나죠. 사회적으로 성공한 후 은퇴한 어르신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서입니다.
강북은 물론이고 강남이나 경기지역에서도 약속장소로 혹은 식사만을 위해서도 일부러들 이곳을 찾는 단골 어르신들이 많은데..
저런 분들을 뵈며 나도 은퇴하고 나서도 이런 비싼 집에서 친구들과 식사약속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모아놔야만 할텐데.. 라는 일말의 초조함이 들기도 하는게 이 집 방문의 부작용이기도 합니다.^^;;
이 집의 불고기맛이 좋습니다. 달달한 양념에 좋은 육질로 입을 즙겁게 하지만 비싼 가격으로 지갑을 아프게 하죠.
그럴 때 대안을 찾아 볼 수도 있습니다.
우래옥 불고기 만큼의 높은 질은 아니지만 시중 대부분의 불고기들 보다 나은 질과 맛을 보여주며 가격은 우래옥에 비해 확 낮은 식당이 지척간에 있습니다.
그곳 소개를 드리며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우래옥으로 들어가는 골목입구 보다 좀 더 가다 보면 이런 입구가 있습니다.

[보건옥]이 그 집 상호죠. 청계천에 거의 다 와서입니다.



이 집은 기억에 원래는 저가의 개고기집이었던 듯. 먹어 본 것은 아니고 오가는 길목이라 기억에 남아서...



골목이 좁아서 사진 찍기가 쉽지 않습니다.

입구에서 직접 고기를 썰어 내던 사장님이 건재하시군요. 모자를 쓰고 계신게 변화.

불고기도 좋고 신선한 돼지고기를 잔뜩 넣어주는 김치찌개도 좋고 대부분의 메뉴가 만족스러운 곳입니다.
분위기가 일반 뒷골목식당스러워서 그런 것에 민감한 분들께는 좀 그렇겠죠만..
데이트용 보다는 친구와의 모임 등에 잘 어울리는 곳입니다.
저는 아는 분들과 이 집에서 불고기 좀 먹다가 김치찌개로 마무리하고 나와서 다시 우래옥에 들려 순면으로 디저트를 하는 [보래옥] 모임을 자주 갖고는 했습니다.
더군다나 이 집에서는 와인 반입을 허용하거든요. 물론 잔값으로 맥주나 소주 혹은 음료수를 주문해 드리는 것은 기본 예의지만요.
보건옥의 상세소개는 기회 봐서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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